확증편향에 빠진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2/24/2026(화)
요한복음 7:37-52, 확증편향에 빠진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예수님이 선포하신 진리 때문에 사람들이 둘로 나뉜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편견 없이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예언자 혹은 그리스도라고 인식했다(40,41절). 또한 예수님을 잡아오라는 명령을 받았던 성전 경비병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는 체포 명령을 따를 수 없었다. 대제사장의 추궁을 받자,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습니다”라고 대답한다(46절). 예수님이 누구인지는 몰랐고, 그 말씀의 진위를 판단할만한 신학적 지식은 없었지만, 그 말씀의 권위에 압도당했다고 솔직히 고백한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편견과 선입견에 사로잡혀서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든 무조건 배척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스스로 성경을 알고 진리를 안다고 자부한 바리새파 사람들이다. 분명 그들은 성경을 남들보다 잘 알았다. 그래서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날 것이라는 예언도 알았다. 문제는 그들이 부분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 전부라고 믿고 확증편향에 빠진 것이다.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살았으나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몰랐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아는 것이 사실의 전부라고 믿었고, 따라서 그들은 절대 틀릴 수 없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이게 확증편향이다, 그런 확증편향에 빠지면 올바른 판단력이 흐려진다. 아무리 예수님이 진리를 말씀하셔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이미 스스로의 잣대로 말씀을 판단하기 때문에 말씀앞에 자기를 내어놓고 판단받을 기회를 놓쳐버린다. 그래서 요지부동으로 고집부리게 되는데 이런 사람들을 전문용어로 꼰대라고 한다.
둘로 나뉘어진 사람들 사이에 니고데모가 선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말을 들어보고, 예수님의 행위를 점검해보고 나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알고 싶어서 한 밤중에 찾아갔었던 사람이다. 그는 성경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아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기가 모르는 더 깊은 진리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자기도 틀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찾아갔었다. 니고데모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학적 기반위에 예수님에게 직접 듣고 깨달은 진리가 더해져야 올바른 믿음에 이른다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이런 자세가 있어야 꼰대증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말씀대로, 생수의 강을 흐르게 하시는 성령님의 인도와 감동이 있어야 올바른 진리에 이르게 될 것이다(38절).
지금 세상에는 꼰대 크리스챤이 너무 많다. 꼰대는 성령님도 감동시키기 쉽지 않을 것이다. 나도 이미 만만치 않는 나이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최소한 꼰대는 되지 말아야겠다.
주여, 편견없이 말씀 앞에 서게 하시고, 내가 말씀을 판단하기 전에 말씀의 판단 앞에 나를 세울 수 있게 하소서. 그리고 부디 성령님의 감동에 순종할 수 있는 영적인 순전함을 항상 지니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