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ere Soldiers” 라는 영화가 있다. 1965년 11월에 있었던 베트남 이아 드랑 전투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멜깁슨이 해롤드 무어 중령의 역할을 맡았는데 그가 부대원들을 데리고 공중 투입 헬기에 오르기 전에 했던 No one left behind라는 연설이 유명하다. 그 대략의 내용은 이렇다. 내가 여러분을 전투에 데려가는 첫 번째 사람이자 마지막 사람이 될 것이라고 약속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약속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다. 우리가 작전지역에 내릴 때, 제일 먼저 땅을 밟는 사람은 내가 될 것이다. 작전지역을 떠날 때 제일 마지막에 헬기에 오르는 사람도 내가 될 것이다. 나는 아무도 뒤에 남겨두지 않겠다. 살았거나, 혹 죽었거나. 우리 모두는 집에 돌아가게 될 것이다. 정말로 가슴 뭉클하게 하는 연설이었다. 이런 리더에게 이런 연설을 듣는 병사들은 어떤 위험한 임무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리더를 따를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본문에는 이와는 정반대의 연설문이 등장한다. “나는 가고 너희는 나를 찾다가 너희의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8:21, 새번역). 예수님이 바리새파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의 대사 가운데 가장 비극적인 대사가 아닐까 싶다. 예수님이 떠나신 후, 그들은 철저히 남겨질 것이고 처절하게 버려질 것이라는 말이다. 왜 예수님은 이렇게 차갑고 모진 말을 하셨을까.
사실 예수님의 마음은 아무도 뒤에 남겨두고 싶지 않으셨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한복음 6:39). 예수님은 사역 초기부터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임을 알고 계셨다. 그리고 체포되기 직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요한복음 18:9). 물론 이 말씀의 직접적인 해석은 예수님 자신만 체포되고 제자들은 보호하기를 원하신 의도로 해석할 수 있지만, 이 말씀에 함유된 영적 의미는 범위가 훨씬 더 넓다. 온 인류를 품는다. 주님은 한 사람도 뒤에 남겨두지 않고 다 구원하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주님의 의도와 상관없이 남겨지는 사람들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세주이시다. 구원해주시는 분이란 뜻이다. 구세주는 구원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너무나 절실한 은인이지만 스스로 구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거나 , 혹은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매력적인 존재가 아니다. 하여 그들은 구세주가 아무리 부르고 청하여도 듣지 않는다. 주님께서 뒤에 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끝끝내 은혜의 초대를 거절함으로 남겨지는 것이다. 그들이, “당신이 누구입니까?” 라고 물을 때마다 주님은 “내가 그”라고 답하신다(24, 28절. 새번역에는 “내가 곧 나다”라고 번역했으나 대부분의 다른 번역본은 “내가 그다(I am He)라고 번역한다). 당신께서 구세주 그리스도되심을 누누이 말하고 있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다.
21절의 이 차갑고 모진 말은, 너무나 뻔히 보이는 결말이기에,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구세주의 안타까운 경고다. 아무도 뒤에 남겨두지 않으려는 구세주의 절박한 초대다. 무어중령은, 살았든 죽었든, 아무도 뒤에 남겨두지 않고 다 집으로 데려가겠다고 약속했다. 이 약속에 귀향은 포함되지만 생명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약속은 무어중령 자신이 살아있어야 지킬 수 있는 약속이다. 하지만 우리의 구세주는,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 살리겠다고 약속하셨다. 부활과 영생이 다 약속 안에 있다. 그리고 우리의 구세주는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내어놓으셨다. 그러니 무어중령을 따르는 일보다 주님을 따르는 일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영광스럽다. 아무도 뒤에 남겨지지 않을 것이다. 단, 스스로 남겨지는 사람 외에는.



